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라이트 (문단 편집) === 커리어 중반, 전성기 === 2007년 , 프랜차이즈 기록인 [[마이크 피아자]]의 24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넘어 2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웠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기록이 멈췄는데 시즌 초반부터 이러한 기록과 함께 우수한 성적을 보이면서 팬들에게 먹튀에 대한 걱정은 지우게 하였다. 9월 16일, 홈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29번째로 30-30 기록을 세운다. 25세 이하 3루수로는 최초의 기록이었고, [[뉴욕 메츠]] 프랜차이즈 기록으로는 3번째 기록이다[* 기록 보유자로는 [[대럴 스트로베리]], 하워드 존슨]. 팀은 어메이징한 기록을 남기고 본인도 어메이징한 기록을 남기며 시즌이 끝났다, 본인은 보여줄 수 있는건 다 보여줬던 해로 .325의 타율과 30-34 107타점으로 [[호세 레예스]],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중심타선에서 활약하고 골든글러브, 실버슬러거 모두 수상, MVP 투표에서도 4위를 기록하였다. 충격적인 지난해의 실패를 딛고 오프시즌에 FA와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강화를 한 2008년,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개막전 본인의 활약과 함께 팀의 승리로 끝나면서 좋은 시즌 출발을 예고하였다. 4월 13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통산 커리어 100홈런을 [[제프 수판]]을 상대로 얻어냈다. 전반기의 성적은 나름 나쁘지 않았으나 후반기에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풀리지 않으면서 팀 성적과 함께 부진했다. .302의 타율과 33홈런 124타점을 기록, MVP 투표에서도 7등에 올랐다. 팀은 올해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였으나 본인은 롤링스 골든글러브, 팀 동료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실버슬러거를 수상하였다. 12월 22일, [[2009 WBC]] 미국 대표의 선수로 최종 선발되었다. 수비쪽에 있어서는 필딩률만 보자면 9할 5푼정도의 평균정도의 능력이지만 포구와 수비시 상황 판단이 좋은편이기 때문에 호수비가 많이 나오곤 한다. 07년과 08년에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며 인정을 받긴 했지만 이 쪽은 골드글러브 3루수 부문의 맹주였던 [[스캇 롤렌]]이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받은 것이며 [[에반 롱고리아]]나 [[아드리안 벨트레]] 같은 AL의 괴수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언 짐머맨]]의 성장 이후 짐머맨과 자주 비교되는 편이다. 2009년, 개막전에서 새로 개장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한 [[시티 필드]] 홈경기에서 메츠 사상 첫 홈런[* 5회, 왈터 실바를 상대로]을 때려내는등 상승세를 이어가나 했으나, 메츠 공격의 주 축이던 [[카를로스 델가도]], [[호세 레예스]], [[카를로스 벨트란]] 등이 죄다 뻗어버리자 거의 홀로 팀 타선을 떠안다시피 하며 고생했다. 8월에는 DL명단에 10명이 오르면서 수맥은 구장을 가리지 않는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시즌 중반까지 거의 쉬지도 못한채 열심히 안타만 쳤고 그러다 결국 8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인 [[맷 케인]]의 94마일의 패스트볼에 머리에 직격되고나서 바로 DL에 올랐다[* 커리어 사상 첫 DL행], 진단결과 뇌진탕 후유증으로 긴 휴식이 필요했다. 이후에 공백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헬멧도 더 튼튼한것으로 바꾸고 경기에 나서게 되나 만회하지 못하고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시즌을 마치게 된다. 2009년 최종 성적은 3할 7리에 10홈런, 장타율 0.447을 기록하며 커리어 로우를 기록한다. 홈 경기 성적이 원정 경기 성적보다 못하여 새 구장에서의 적응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2010시즌, 동료인 [[호세 레이예스]]와 [[플로리다]] 세인트 루시에서 열린 메츠의 [[스프링캠프]]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2주 일찍 훈련을 시작했다.[* 지난 시즌 부진 때문에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오프시즌 개인 훈련기간 때도 그렇고 이번 스프링 캠프에서는 체중과 근육량을 늘리며 더 많은 장타를 노리고 있다.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한 개막전에서 조쉬 존슨은 상대로 투런 포를 걸쭉하게 뽑아내며 기대를 올렸고 4월 27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라몬 트론코소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0번재 안타를 차지게 뽑아냈다. 시즌 중반까지 타율은 낮았지만 앞 순번 타자들의 활약으로 차려진 많은 밥상에서의 활약에 57타점을 기록하여 내셔널 리그 타점 1위를 마크하고 6월 한달간 4할의 타율에 11개의 2루타 6홈런 29타점의 미친 활약으로 올스타에도 선발되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겨울부터 착실히 준비한 이번 시즌은 다소 부진하긴 하였으나 0.283의 타율, 29홈런, 107타점 19도루를 기록해 어느 정도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옥의 티로 실책이 20개로 메이저리그 3루수 중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1시즌에는 개인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데다가 시티필드의 영향[* 선수 본인이 홈런과 타점에 대해 의식을 하다보니 컨택과 선구안 자체가 망가져버렸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엔 거의 차이가 없는 타율-출루율을 기록했는데도 셰이 스타디움을 떠나 시티 필드로 온 09년 첫 해에 장타율이 9푼에 가까이 떨어져버렸고 삼진도 많아졌다. 이듬해 장타율을 5할대로 다시 올렸더니 컨택과 출루율이 바닥을 쳤고 OPS마저 7할대까지 떨어져버렸다. 이것이 장기적인 몰락의 징조인지 아니면 부상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지켜봐야 알 듯. FA로 풀리는 [[호세 레예스]]와 함께 팀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설이 잠시 제기되었으나 이렇게 막대한 수입을 안기는 티셔츠 팔이를 트레이드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2년에는 완벽히 부활하였다. [[밀어치기]]에 눈을 뜨며 정교한 타격이 가능해져 시즌 중반까지 내셔널리그 타격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고, 시티 필드로 옮긴 후 급격히 많아진 삼진 문제를 드디어 해결, 볼넷:삼진 비율을 전성기 수준으로 회복하면서 메츠의 타선을 이끌었다. 옥의 티로 후반기에는 7월 13일부터 9월 25일까지 볼넷 6개/삼진 63개라는 선구안을 과시, 페이스가 쭉 떨어졌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수위타자 경쟁을 하던 3할 중반대 타율이 시즌 종료를 앞두고 3할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세이버메트릭스]] 수비지표 상으로는 리그 최고 수준의 필딩 기여도를 기록했고 20홈런을 넘기고 3-4-5에 버금가는 비율스탯을 기록했으니 1년 밥값은 했다고 볼수는 있다. 2012년 11월 30일, 메츠와 7년 $122M[* 2013년 실행된 옵션을 계약에 포함할 경우 8년 $138M이 되고, 이는 [[요한 산타나]]의 계약을 뛰어넘어 메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 된다.]에 달하는 연장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초 비슷한 시기 체결된 [[에반 롱고리아]]의 6년 $100M 계약과 비슷한 수준의 계약을 메츠는 제시했지만 라이트 측에서 이를 거부, 계약규모가 커졌다.[* 연간 $20M이 최고 선수의 연봉에 대한 지표가 되고 있는 추세에서 연평균 $20M이 안되는 값에 라이트를 쓴다는 것은 메츠가 좋은 협상을 한 것이라 봐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